‘창백한 푸른 점’은 칼세이건이 쓴 책에 수록된 사진으로 광활한 우주 위에 희미한 푸른색 점에 불과한 지구를 지칭한다. 이처럼 우주의 먼지와도 같이 작은 지구 속에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는 거대한 세계의 실체에 대한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반면 공혜진은 아주 작고 손톱만한 ‘잎과 조개’ 속에서 무한한 시공간을 발견하는 작가이다. 작가는 아주 흔하디흔한 나뭇잎들과 조개껍데기들을 채집하고 계속해서 바라보며 이야기를 찾아간다. 다시 말해 그는 그림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그림을 발견하는 화가이다.
개나리미술관에서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크게 ‘잎그림’ ‘조개그림’ 시리즈로 나뉜다. 춘천 작가의 집 동네와 세종 수목원 둥에서 채집한 벌레 먹은 나뭇잎 그림들과 속초, 제주, 오키나와의 바다에서 주은 조개껍데기와 그 무늬를 토대로 그린 작품들이다.
잎그림들은 주로 벌레먹고 상처난 잎들을 대상으로 한다. 부서지거나 구멍 난 잎에서 생성되고 돋아난 이야기들은 작가의 섬세한 붓터치와 만나 생명력을 얻는다. 잎을 줍고 책갈피에 넣어 말리고 한참을 바라보는 일은 작가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시간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올해부터 작업하기 시작한 ‘조개그림’ 역시 아주 작은 조개껍데기의 무늬들을 바라보는 일에서 시작한다. 작가는 잎에서 조개로 가는 길이 땅에서 바다로 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마치 상처가 단단한 껍질로 아물어가는 과정처럼 여겨졌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공혜진작가는 이 작디작은 자연으로부터 배운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하여 작가노트 마지막에 적고 있다. “우리는 크고 대단해지려고 사는 것이 아니고, 일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느끼고, 마음 가는 것을 표현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뭇잎 한 장 한 장이 알려줬다.”
출품된 작품은 잎그림 20여점, 조개그림시리즈 40여점, 그 외에 나뭇잎 꼴라주 상상도감시리즈 30여점 등이며, 길에서 바닷가에서 주은 잎과 조개, 뜨개질과 바느질로 만든 인형들과 그릇들도 함께 전시된다. 12월 8일까지 3주 가까이 진행되는 전시 기간동안 대부분 상주하며 바느질과 꼴라주 작업을 지속할 예정이다.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변화하는 모습도 살펴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