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12월

진주영 Jin Jooyoung
2022. 11. 29 -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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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개
진주영은 정선 사북을 토대로 활동하는 젊은 작가이다. 그는 사회에서 비조명되거나 사라져가는 대상 혹은 공간에 대하여 탐구한다. 특히 역동적이고 치열했던 삶 위에 켜켜이 쌓여 어둠에서 빛을 발하는 대지(大地)에 주목한다. 그는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순환적 움직임을 수평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비가시적인 영역에서 살아 숨 쉬는 형상을 가장 작은 단위 원소인 점을 기반으로 시각화한다 있다. 최근 작가의 회화 작업은 융복합적인 장르와 결합하여 장소특정적 설치, 미디어아트 등으로 확장해 가고 있다.
개인전《틈》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간극 속에 작가가 머물며 사유하는 그 ‘사이’를 가시화 한다. 우리는 각각의 ‘현실’과 ‘환상’이라는 두 세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현실은 눈에 보이는, 우리가 속해 있는 세계이며 환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과거, 현재, 미래까지 뒤섞인 범우주적 세계이다. 현실과 환상, 이 둘의 공간과 시간이 맞물려 있는 그 틈 어딘가에 머물고자 할 때, 비로소 다른 차원의 존재들을 인식하게 된다. 이 두 세계의 틈을 이야기하는 진주영의 작업들은 과거와 현재의 삶과 죽음이 긴밀하게 연결된 일상 속 공간을 기반으로 그 의미와 가치를 찾는다.
전시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시공간에서 순환하는 찰나의 지점 속에 움트는 생(生)과 근원에 대해 조명하였다. 특히, 작가는 소멸 이후에 재탄생되는 것들 위로 연약하지만 찬란하게 숨 쉬며 존재하는 것들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러한 주제 의식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주변의 비조명된 것들과 그 가치를 인식하고, 각자의 환상 속에서 숨 쉬고 있는 것들의 의미를 모색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작가노트
나는 일정한 대상에 대해 과거에서부터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가거나 사유하는 것, 혹은 태어나 자란 장소, 나아가 그 이전의 신화 · 역사적 궤적에 끊임없이 환기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땅과 물 아래, 들여다 보면 보이는 그림자와 빛에 대한 집요한 끌림은 제주 우도로, 그리고 고향인 사북이라는 공간으로 향했다. 나를 인지하는 과정과 ‘되돌아가는 것’ 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은 곧 태초의 대지환경인 비어있는 시공간으로 연결된다. 모든 것이 부재한 무의 공간에서 하나 하나의 점들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어둠과 빛이 함께 호흡한다. 이는 비어있음으로 인해 가능한 무한한 가능성과 새로운 출발을 갖는 것이고, 비어있음에서 탄생하는 것들은 우주의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비어있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나에게 검은 묵색은 눈에 보이는 색의 겹을 해체하고 바라보기 위한 수단으로 모든 대상의 본질적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색이며, 나의 회화는 무한한 가능성이 깨어있는 비어있는 화면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순수한 상태를 추구한다.

검고 투명한 다정 Well-Lit Nights

김지민 Kim Jimin
2022. 12. 13 -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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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에서 따스함을 감각한다면

-콘노 유키

어둠에 둘러싸인다면, 아마도 우리는 곧 방향성을 잃게 될 것이다. 어디로 가야 맞는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 불안은 생긴다. 앞(도)뒤(도)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의 방향성을, 우리에게 그 방향성을 갖도록 이끄는 것은 바로 불빛이다. 그런데 불빛은 지금 꽤나 가깝게 우리를 향한다. 횃불이나 가정집의 불빛을 보고 그곳에 인간이 존재하는 자취로 감지하는 데서 더 나아가,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환경으로 물러선 가로등은 인간을 보다 자유롭게 걸어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제 우리는 불빛 사이에서 스스로 잘 움직일 수 있다. 어둠 속을 두려워할 일도 없이, 공간은 불빛 아닌 인간의 활기로 지배되기 시작한다. 인간의 활기는 시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한 불안에서 우리는 어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물건들을 가까이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주체적으로, 자발적으로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빛은 누군가의 존재를 알리는 데서 더 나아가 우리가 사는 환경의 근본 조건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빛을, 그 빛이 발하는 누군가의 존재를 얼마나 기대할까. 김지민의 그림에서 오는 따스함은 포근히 둘러싸인 환경보다는 순간적인 지나감에서 출발한다. 이번 개인전 《검고 투명한 다정》에서 어둠 속에 빛을 그린 표현은 보는 사람에게 따스함을 안겨준다. 그런데 이 따스함은 사람이 길을 걸어가고 보고 느끼는 감각에서 온 것과 미묘하게 다르다. 우리 앞에 펼쳐진 장면은 작가가 차창 너머 본 풍경이다. 펼쳐진, 그러나 진입할 수 없는 장면 앞에서 우리—작가와 보는 사람—는 지나가는 그 순간에 멈춤을 보게 된다. 가로등이나 건물 조명의 배치와 위치가 언제 흐트러지거나 겹쳐서 안 보이게 될지도 모르는 순간적인 안정감, 조금만 바뀌어도 그 균형이 흐트러지는 그 장면은, 내가 컨트롤하고 보는 시점(視點/時點)과 다르다. 공간을 걸어간다면 금방 해소되는—활동성으로 수렴되는 것과 달리, 그림에서 빛과 사물들의 배치는 보는 사람과 빛(들)의 간격을 궁극적으로 유지한다. 

그 간격과 배치는 일시적이지만, 우리는 따스함을 느낀다. 어둠 속에 환경으로서 자리잡힌 지 오래, 빛을 보는 것은 아주 잠깐이다. 김지민의 회화 앞에서 우리는 빛의 반짝임에 한때 존재를 알리던 인간의 흔적을 다시 만난다. 당연히 가로등이나 건물 조명은 인간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존재의 따스함을 감각을 통해 들여다보게 된다. 작품 앞에서 우리의 시점은 빛을 향해/빛에 의해 이끌린다 1)—사람을 안내해 주는 존재가 그곳에 확실히 있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안다. 하부구조처럼 환경적인 기본 조건에 물러서기에 앞서, 우리는 인공적이고 한시적인 빛의 배치 속에서 믿을 수 있는 존재를 되찾는다. 

밤하늘처럼 눈앞에 별자리가 펼쳐진다. 김지민의 작품에서 보이는 별자리는 인공적이고 한시적인 불빛으로 구성된다. 이때 인공적이라는 표현과 한시적이라는 표현은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많은 조건이 자연화되었다. 빛도 시간도 이미 거기에, 시공간을 불문하고 비치며 흘러간다. 우리가 보내는 삶의 조건이 되면서 빛과 시간을, 나아가 그곳에 어떤 존재를 감지하는 기회는 사라졌다. 김지민의 그림에서 우리는 어둠 속에서 불빛을 보고 찾아간 것처럼, 그 순간성과 인공성에 존재를 믿고 만난다. 이 기회를 보는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이 별자리의 배치—멀리서 보는, 인공적이고 순간적인 배치다. 

서서히 조명은 꺼진다. 위치가 변하지 않은 채, 시간을 거스르지 않은 채, 불빛은 잠든다. 해가 떠 있는 시간뿐만 아니라 우리는 밤에도 조명 아래 보다 자유롭게, 주체적으로 길을 걸어갈 수 있다. 불빛과 사람의 거리(street/distance)는 그렇게 해소되어 사라진다. 김지민의 회화에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보는 것은 밤의 풍경이 아니라 언제나 낮처럼 지낼 수 있는 생활 속에 감춰진, 누군가의 존재하는 느낌과 이를 믿고 만나는 일이다. 

Layer upon layer

마혜련 Ma Hye Ryeon
2022. 12. 27 - 12. 31

개나리미술관에서는 2022년 마지막 전시로 마혜련작가의 《Layer upon layer》를 개최한다. 마혜련은 ‘관계의 온도’라는 타이틀로 생명이 가진 온도와 존재 간의 관계 속에서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탐구하는 추상회화 작업을 지속하여 왔다. 이번 전시는 고향인 강원도 평창으로 회귀한 이후 산(山)의 기운을 기록한 2021년 전시인 <첩첩의 정도>의 연결선 상에 있다. 작가는 고향으로 돌아간 이후 자연과의 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고 계절의 변화 속에 유동하는 에너지와 생명체들의 순환을 느끼며,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번안하는 회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 마혜련이 집중한 것은 바로 색(色)이다. 흔히 소비되는 화려하거나 막연한 초록이 아닌, 수많은 생명체들을 겹겹이 품고 있는 색채들로 이루어진 섬세한 표정의 ‘산(山)’에 대한 작업이다. 관찰자인 작가는 보이는 세계와 그 이면에 지각할 수 없는 세계의 경계를 작가만의 색채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세계의 이면뿐 아니라 너무도 익숙해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소외된 영역까지 미시적인 과점으로 들여다보고 기록한 조각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다.

개나리미술관의 2022년 마지막 전시이기도 한 마혜련의 《Layer upon layer》는 평창에서의 작업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시 돌아온 춘천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개인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무채색의 선의 파동으로 이루어진 연필작업에서부터, 면으로 확장하고 입체로 반복되는 조형요소들의 유려한 시각적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생명이 움츠리고 움직임이 정지된 계절에 추상회화의 꿈틀거리는 색채와 선의 시각적 즐거움을 통하여 따스한 생명의 기운을 얻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