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12월

Repair, Rest.

장덕진 Jang Duckjin
2023. 7. 4 - 7. 16

고향인 양구를 터전으로 도자 작업을 해오고 있는 장덕진 작가의 개인전 <Repair, Rest.>는 9년 동안 자신의 페르소나이자 작품의 소재였던 수달인 ‘덕수’와의 변화를 맞는 국면에서 과도기적인 휴식을 의미하고 있다. 작가는 깊은 산속 맑은 물에서만 사는 천연기념물인 수달을 소환하여 의인화하는 그간의 작업들을 통해, 수달의 형상을 빌려 다양한 인간상을 창조해내었다. 특히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상륙하였을 때에는 실제 마스크를 씌운 수달을 만들어, 시대적인 상황을 해학적인 코드로 접목하였다.  2022년 12월 처음 선보인 <나의 모양>에서는 수달의 탈을 벗은 작가의 얼굴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마치 그동안의 관객들과 만났던 수많은 덕수들이 수달이 아니라 작가 본인이라고 밝히고는, “속았지?”라고 해맑게 웃고 있는 듯 하다. 
신작 애이불비(愛易不非)는 가면을 쓰고 있다. 한 손은 가슴에, 다른 한 손은 다가오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속으로는 슬프지만, 겉으로는 슬프지 않은 척 한다’는 뜻을 지닌 애이불비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나, 새로운 만남을 향해 떠나갈 작가의 모습이 비추어 진다. 이번 전시에는 길고양이인 ‘고영희’를 형상화한 신작도 선보인다. “Repair, Rest.”라는 전시명에서부터 재정비와 휴식을 선언한 작가의 행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짐작하고 상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한다. 깊은 계곡 수달이 도시에 놀러와  행복을 나누어 주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관객들이라면 모두, 작가의 쉼표와 마침표 사이로 초대한다.

핵폭탄 떨어지기 3초전 

2023. 8. 1 ~ 8.13 / 한동국 Han Dong Guk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주제로 첫 번째 개인전 <현관문>을 개최하였던 한동국작가가 다음 챕터의 문을 연다. 이번 전시 역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이 작품의 주제이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 위로 수상한 검은 물체가 떨어지고 있다. 바로 핵폭탄이 떨어지기 3초전의 풍경들이다. 
작가는 모두가 당연하게만 느끼는 삶의 한복판에서 죽음의 순간을 맞닥뜨리도록 한다. 죽음과 삶이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이처럼 강력한 표현 방식으로 풀어낸다. 
비상구를 향해 필사적인 탈출을 시도하는 인물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러나 불과 3초 후면 모든 것은 사라지고 없다.  

한동국은 목탄이라는 단일한 재료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다. 그가 사용하는 ‘목탄’이라는 재료는 무광의 깊은 어둠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로서, 긁고 비비고 화면에 정착시키는 반복적인 수행의 과정을 통해 자신을 발전시켜나가는 시간성을 지닌다. 또한 ‘나무에 대한 장례의식인 화장(火葬)’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그리는 행위가 곧 죽은 이에 대한 화장, 곧 애도의 한 형태라고 보고 있다. 

작가는 죽음의 격렬한 상황이 아닌, 직전의 대비되는 삶의 풍경을 공존시키는 방식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순간의 가치를 다시금 새겨보게 한다. 목탄 그림의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 작가의 죽음에 대한 사유에 집중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인공생

2023. 8. 15~ 8.27 / 이승호 Lee Seung Ho

타이틀인 “인공생”의 인공(人工)은 사람의 힘으로 자연에 대하여 가공하거나 작용을 하는 일. 즉 사람이 만들어 낸 기계문명사회 속 생(生)에 대한 고찰을 더한 합성어이다. 동시에 사람(人)과 미래의 과학기술이 공생(共生)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함의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선으로 패턴화된 다양한 형태의 기린이 등장한다. 이 기린은 20대 청년이었던 이승호의 자화상이다. “기린”은 주로 ‘타자’와 ‘나’라는 2가지의 대조적인 형태로 구현된다. 곧게 뻗은 큰 키의 올곧은 형상의 기린은 타자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와 상반된 형태로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의 기린은 유약한 개인의 존재를 은유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타자와의 비교와 열등감으로 지친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쓰인 알록달록한 색감의 전선은 동시대의 관계성을 함축적으로 담아낸 매체로, 작가가 재해석한 현대인의 삶을 표현하는 도구로 해석될 수 있다.
살아있는 도시에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배후의 수많은 전선들의 연결이 필요하다. 흡사 인체의 혈관 혹은 조직세포와 같아 보이기도 한다. 절연체에 감싸져 에너지 전달의 목적으로 이루어진 전선에는 욕망하는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는 개인의 모습이 투영된다. 이처럼 작가는 화려한 도시의 색과 같은 형형색색의 전선들을 해체하고 겹겹이 쌓아 만들어진 패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진화된 개인의 형상을 기린에 빗대어 창조하고 있다.

세 가지 색 : 그린
Three Colors : Green

2023. 8. 30 ~ 9.10  / 공혜진, 이진경

여름이 다 가고 있다.
풀벌레 소리가 가득하다.
지난 비로 계곡의 물 소리가 커졌다.
이 계절은 서늘한 풀벌레 소리가 가장 빛난다. 드문드문 어두운 소식이 들려 온다.
모든 색이 가신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았다. 저 흐르는 개울과 변함없는 수 많은 초록과 그 사이 곁하여 사는 작은 생명들이 끝없이 가득하다.
난, 해야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잠시 잊고, 떨어지고 흐르고 여전히 꿋꿋이 살아가는 것과 잠시 마주 본다. 그저 고맙다.

2023. 8. 15. 이진경
마주 보며

매일 다니는 동네 골목에서 라일락의 벌레 먹은 잎 한장을 데려와 책상에 올려두고 반나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음날은 잎의 외곽을 따라 천에 선을 그리고 바느질 한다. 
또 그 다음은 잎안에 있는 잎맥을 따라 선을 그리고 바느질 한다. 
잎에 있는 작은 결각 하나 잎맥 하나를 바늘로 한땀한땀 따라다니면 내 안에 라일락 잎이 한땀한땀 새겨진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 어느 곳에 있는 라일락을 만나도 잘 아는 친구를 만난 것 같다. 
내가 바라보면 식물도 나를 본다. 그렇게 같이 보낸 시간들이 쌓이면 우리는 어떤 말도 필요없는 사이가 된다. 

2023. 8. 16. 공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