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6월

사각사각

2023. 1. 31 - 2. 12
곽현규 구구 권원석 최성우 한동국 한태호

6인의 작가는 “삶에서 마지막 순간이 온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혹은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길 것인가?” 등, ‘죽음’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하던 중 ‘유서’를 쓰게 되었다. 이제 막 성인으로서 사회에 발을 내딛은 이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먼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이태원 참사를 상기해본다면 죽음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언제든지 존재한다. 전쟁, 전염병, 경제난, 기후변화, 테러, 인명사고 등 혼돈과 불안의 시대에, 이들 6인의 젊은 작가들은 세상에 남길 ‘무언가’를 사유하는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매일의 시간을 기록하는 곽현규작가는 죽음의 순간, 지나온 삶의 찰나들을 떠올린다. 기억 속에 차곡차곡 새겨진 이미지들을 캔버스 위에 새겨가며 스스로의 삶의 시간을 돌아본다.
독창적인 캐릭터를 통해 다양한 심리를 디지털아트 및 캔버스에 묘사하는 작가 구구(GuGu)는 ‘극단적 선택’이라는 우회적인 표현을 쓰는 ‘자살’을 소재로 내놓았다. ‘살자’와 ‘자살’이 바뀌는 언어유희적 표현에 착안하여, 반전의 효과를 통해 이중적인 표정을 갖는 캐릭터 <Die hard>를 창조한다.
최성우 작가는 할 이야기가 많았다. 목탄으로 나무판에 유서를 쓰고, 쓰고, 쓰다 보니 까만유서가 되었다. 글로 그림을 그린 작품들을 선보인다.
권원석작가는 사회의 주역이 되어야 할 청년들이 노력해도 보상받지 못하는 시대 속에서 패배자가 되어 체념하는 현실과 죽음을 연결시킨다. 작가는 인간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죽음에 대하여 오히려 유쾌하게 물감을 쌓아 올린다.
유일한 2000년대생인 한태호작가는 보다 직접적으로 죽음이라는 존재에 파고들기를 선택하였다. 혐오와 공포 속 극단적인 괴물의 형태로 표현된 ‘죽음’의 형상을 마주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사적인 기억을 토대로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현관문’으로 표현하였던 한동국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유서의 내용을 줄거리로 하는 9컷의 만화를 제작하여 선보인다.

전시명인 ‘사각사각’은 유서를 쓰는 상황을 드러내는 의성어이자, 죽음에 대한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사각의 회화 평면을 의미하는 중이적인 표현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죽음에 대한 사유의 의미를 떠나, 이제 막 사회에 놓인 우리시대의 청년들의 고민과 정서를 엿보게 한다는 점에서 공감과 소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또한, 패배와 추락을 부정하지 않으며 지옥 속에서 피어오르는 새로운 세대의 부상을 지켜보게 한다.

공감의 공간

2023. 2.21 - 3. 12
마혜련 박온 신리라 이은정

《공감의 공간》은 춘천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혜련, 박온, 신리라, 이은정, 4인의 여성 예술가 크루인 산들손들이 주관하는 전시로, 《나의 부재》(2022) 이후 2번째 기획전시이다.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경계, 생업과 본업의 간극 속에서, 책임감이 부과되는 나이에 접어든 80년대생 작가들의 고민을 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사회적인 관계 속에 부여된 위치와 이름들을 벗겨내고 삶 속에 느끼는 결핍과 표출하고자 하는 감성을 각자의 조형언어를 바탕으로 전시장에 구현할 예정이다. 

이은정은 가면을 쓴 ‘모즈비’라는 캐릭터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 속 자신을 들여다본다. 가족에서의 나, 직장에서의 나, 예술가로서의 나라는 존재는 여러 가지 사회적 틀과 타인에 의해 규정되곤 한다. 그 수 많은 사회적 ‘나’ 속에 결핍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박온은 <우울의 못>이라는 타이틀로 디지털 페인팅 작품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고단한 삶의 패턴 속에서 묻어두었던, 스스로를 이루고 지탱하는 감정들에 주목한다. 기묘하게 반짝이는 색채와 형상들로 박온만의 우울의 깊이를 표출하고 있다.

지난해 “Layer upon layer”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을 선보였던 마혜련은 눈 오는 풍경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신작 회화 작품들을 전시한다. 작가는 소리 없이 견디고 순환하는 자연의 시간들에 눈과 귀를 열고 끊임없이 쌓이는 찰나의 풍경들을 포착한다. 이를 통해 예술가로서의 시야를 넓혀가며 캔버스 위 붓질을 겹겹이 펼쳐 나간다.

마지막으로 <나의 이름들>이라는 제목으로 설치 작업을 선보이는 신리라는 ‘엄마’라는 역할과 ‘예술가’로서의 자아에 대한 정체성의 경계에 서 있는 작가의 내적 공간을 시각화한다. 희미해져 가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회화와 조각적 작업을 통해 선보이는 신리라의 작품은 누구나 맞게 되는 시절에 대한 따스한 위로와 응원을 담고 있다.

이처럼 《공감의 공간》은 ‘공감’을 잃어버린 세대가 만나 공감의 가능성을 모색해 가는 이야기이다. 회화, 설치, 디지털페인팅,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만나게 되는 이번 전시는 가까운 생애 주기에 놓인 작가들의 삶에 대한 접근 방식을 시각예술 작품을 통하여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반추해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자 한다.

서숙희 : 사물의 기록

살구나무집-산,집,그릇
2023. 3.14 - 3. 26

서숙희는 시작과 끝을 정하지 않은 그림을 그린다. 하루하루 반복적으로 칠하고, 지우고, 긁고, 또 칠하는 시간들이 쌓일 뿐이다. 마치 농부가 땅을 일구고 농사를 짓듯, 작가는 그림이라는 노동을 한다. 누군가에겐 색을 칠하고 형태를 완성해가는 것이 그림이라면, 서숙희는 색을 덜어내고 화면을 비워가는 데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다. 어눌하고 빈 듯 하나 시간의 깊이가 소박하게 스며든 지점을 찾아갈 때, 비로소 손을 놓는 것이다.

‘서숙희 색조’라 불릴만한, 푸르스름한 깊이감을 지닌 청록빛의 색은 그저 몇 번의 붓질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도 없는 엷디엷은 색이 드리워지고, 다시 지워내고, 그 위에 칠해지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 빛을 품은 색조가 생성된다. 반투명한 아크릴판 위로 염색되듯 입혀지는 색조는 형상과 배경의 구분조차 모호하다. 이는 사물의 외곽과 공간의 영역이 중첩되어 마치 배경 속에 사물이 배어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에게 ‘색’만큼 중요한 조형요소는 바로 ‘선’이다. 회화의 캔버스 위로 그려지는 선과는 차별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서숙희는 아크릴판 위를 긁고 새기는 방식으로 배경과 형상의 질감들을 만들어 나간다. “사물이 자신의 몸에 그어 놓은 상처나 얼룩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런 걸 그리고 싶어졌다.”고 쓴 작가 노트에서 읽히듯이 그에게 선은 오래된 시간성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처럼 노동집약적인 과정을 통해 그가 그리는 것은 매일 눈으로 쫓아가는 산등성이와 대나무로 둘러싸인 집, 그리고 먹고, 씻고, 치우는 유리잔과 그릇들이다. 작가는 그 대상들을 가능하면 가볍고, 담담하게 기록한다. 격자무늬의 배경과 푸르스름하게 물든 바탕 위로 무심히 부상하는 형체들은 그 투명성 때문에 마치 기억 속에 자리한 흐릿한 흔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특정한 사물이 지니는 사실성을 넘어 시간성을 지닌 풍부한 리얼리티를 표상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에 대한 완전한 재현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작가는 잘 알고 있다. “이맘때면 매년 대나무 그리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완성하지 못하고 접는다. 아무리 그려도 실제의 대나무만 못하기 때문에... 올해도 작년에 그리다 접어둔 대나무 그림을 꺼냈다.”고 한 서숙희의 메모는 가까이 가닿을 수는 있어도 영원히 완성할 수 없는 그린다는 행위에 대한 스스로의 독백과 같다. 

그럼에도 아크릴판 위에 무수한 선으로 새겨진 그릇은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꼭꼭 눌러 그린 격자의 홈들 속에 아스라이 드러나는 산의 형상은 어느덧 우리의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우연히 전시장을 들른 이가 있다면,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을 무심한 풍경이 주는 작가의 위안 속에서 잠시 쉬어가면 어떠한가.  

사라진 것을 찾는 사람들

길종갑 Gil Jong Gab
2023. 6. 21 - 7. 2

길종갑은 고향에서 고향을 그린다. 그에게 고향은 땅이고 사람이고, 역사다. 그의 작품은 누추한 광경들조차 대지에 깊숙이 뿌리내린 충만한 삶에 대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사는 과정이 그림’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뭘 그릴까 고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행운아다. 고향은 단순히 여러 지역 중의 하나가 아니라, ‘세상의 중심’이기에 가능한 발상이다. (이선영 평론가)

이처럼 [사라진 것을 찾는 사람들]은 작년 [사창리사람들]의 후속 전시로, 자신이 속한 마을 사람들과 떠나간 이들에 대한 기억, 함께하는 자연, 노모와의 일상들을 거칠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가 작품에 담은 풍경들은 점차 사라져가는 것들에 속한다. 그 안에 살아가는 작가의 심상이 거침없는 표현주의적인 색감과 붓질에 담겨 화폭에 남겨진다.

이번 전시는 특히 작가가 그림마다 남긴 노트를 함께 전시하여, 작가의 고백과도 같은 단상들을 들춰볼 수 있는 장면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전시장 중앙에는 지난 김홍도의 관동팔경 지역을 답사한 후 영감을 얻어 그린, <이상한 풍경>이 걸개그림 형태로 전시된다. 남북을 나눈 휴전선 철책과 강릉의 산불, 과거의 선비들이 공존하는 동해의 신풍속도이다. 
출품작품 모두 2023년 신작으로, 총 48점이 전시되며 <이상한 풍경> 1점을 제외한 모든 작품을 오랜만에 유화로 작업하였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하여 수평적인 시선을 가지고 삶과 예술을 영위하는 길종갑 작가만의 색채와 조형 세계로 모두를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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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프로필

강릉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및 부스전22. 사창리사람들 (개나리미술관)
    화전 畵田 (금보성 아트센터)
21. 이상한 풍경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장)
20. 화천, 그 빛나는 골짜기에서 노닐다- 길종갑 최영식 2인전 (화천갤러리)18. 엄마의 정원 (춘천 명동집)
16. 개인전 (안젤리코갤러리)
14. 개인전 (춘천문화원)
11. KASF전(서울무역컨벤션센터)
11. 부스전(캐나다 퀘벡 윈터 카니발)
11. 개인전 (인사아트센터)
10. KASF전(서울무역컨벤션센터)
09. 개인전 (갤러리 스페이스 공)

그룹전
23. 동학농민혁명 기념특별전/ 혁명, 그리고 혁명 그 너머의 것들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전시실)
23. 어제와 오늘 (문화공간 역)
22. 진창화춘전 (문화공간역)
22. 광야에서 (춘천문예회관 전시장)
22. 강원작가트리엔날레 (평창 송어축제장)
21. 백두대간 한라산을 품다 (춘천국립박물관 열린전시실)
20. 광주 40주년 특별전 별이 된 사람들 (광주시립미술관)
20. 리얼리즘 오늘 전 (춘천문화예술회관)
19. 제주4.3미술제 경야
18. 촛불혁명과 평화의 창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창원 마산 3.15아트센터/ 광주금호갤러리/ 부산민주공원)
    강원미술한마당 – LINK (명동집)
17. 아직도 슬픈열대-난초 (부성타운)
    화천평화미술 –리얼리즘 상상력전 (화천갤러리)
    산과함께 72 우리역사전 (춘천문예회관 전시장)
16. 강렬하게 리얼하게 (춘천문예회관 전시장)
    산과함께 71 특별전 순실뎐(춘천문예회관 전시장)
15. 평창비엔날레 GIAX FAIR (용평리조트)
    산과함께 70 (춘천문예회관 전시장)
12. 화천전 (화천갤러리)
10. 평화미술제(5월 그 부름에 답하여 - 광주 금호미술관)
    소통과교감전(포스코갤러리)
09. 오래된 풍경전, 춘천의 인물전(갤러리 스페이스공)
    평화미술제(제주현대미술관)
08. 미공간 봄 개관전(낭천에서 두물머리)
06. 강원민족미술인협회 창립전 및 협회전(춘천, 원주)
02. 청년미술 27인 초대전 (서울 청년 미술관)
    아침못 창립전 및 동인전작품소장. 광주시립미술관 (광주(光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