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최덕화 : 향수병 Homesick

2021. 9. 15 -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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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화 작가는 풍경을 그린다. 그리는 것만이 아니라 새기고 찍고 조각조각 내어 붙인다. 그가 그리고 찍고 새기는 풍경들은 그 색상과 형태 모두 비현실적이며 생경하다. 알고 보면, 이토록 낯선 풍경은 작가의 익숙하고 사무치는 기억 속에서 비롯된다.
정든 집을 떠난 그가 초창기 유화로 그린 풍경화는 서울 구도심의 집 지붕이었다. 옥탑 방에 자취하던 시절 늘 그의 눈에 들어오던 풍경이기도 했다. 끊임없이 새로 지어지는 빌딩과, 지붕을 군데군데 철판으로 때운 기와집들이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레 공존하고 있었다. 그 자태들을 마치 열 감지 카메라를 통하여 보는 것처럼 강렬한 색감으로 캔버스에 담아내었다. 작가는 보이는 곳 이면의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고 싶었다. 풍경은 저‘밖’에 있지만, 그것을 느끼고 그리는 자신의 감정을 이입한 풍경의‘안’을 건져 올리려 했다. 이 지붕 시리즈는 유화라는 매체의 한계를 넘어 실크스크린 판화와, 천 조각을 콜라주처럼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진화하여 그녀만의 작업 스타일을 구축하여 나갔다.
2014년 <안녕 잘 지내>는 인터넷으로 접하였던 아이티 난민들의 서식처인 천막들에서 착안한 폐현수막을 조각보처럼 이어붙인 것으로, 하나의 전환기가 되는 작업이다. 이후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풍경을‘포장’하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유년의 기억 속 그리움을 상징하는 장면들을 끄집어내어 알록달록한 형광 빛 포장으로 감싸 안았다. 
옛집 마당의 밤나무와 파꽃은 별빛으로, 토끼풀은 하트 무늬로 디자인되어 풍경화라기보다는 패턴화 된 일러스트를 연상시킨다. 또한 샛노란 형광 빛이나 핫 핑크 등 언캐니(uncanny)한 빛깔은 그리움이 짙어져 향수병이 된 작가의 패러노이드(paranoid)에 가깝다.
향수의 근원이 되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편집증적인 애착은 오래된 가옥과 골목의 무늬를 채집하는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9년 춘천 약사명동 공공미술 작업 중 하나였던 <약사산책>의‘약사리무늬’와, 2020년 근화동 스튜디오 주변 오래된 여인숙 동네의 무늬들을 채집한 작업 등이 대표적이다. 사라져가는 풍경을 포장하듯이 그렸던 회화는 오래된 동네의 무늬를 새겨 넣어, 사물을 감싸는 포장재인 천을 만드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각각 분절된 작업으로 보이는 그의 회화와 디지털작업, 공예 등의 연결 지점은 사라져버린 사물과 풍경에 대한 애착에 있다.
개나리미술관에서는 Homesick(향수병)라는 내면적 속성을 기반으로 작가가 구축한 스타일의 행보를 따라가 보는 여정을 마련하였다. 춘천이라는 지역적인 향수가 가장 강하게 스며있는 작가 중의 한명인 최덕화의 <Homesick> 전시를 통해 누구나 품고 있을 그리움의 근원을 떠올려 보았으면 한다.

류재림 : 점 점 점 Dot Dot Dot

2021. 10. 02 -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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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주사기로 하나하나 점을 찍어 반복적인 수행의 과정을 통해 생명력 있게 꿈틀거리는 꽃의 환영(illusion)을 만들어내는 류재림은 실제와 허상의 구분마저 모호해진 디지털 세계에 대한 성찰이라는 화두를 던지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작가는 곤충의 촉수처럼 꿈틀거리는 듯 표현된 진달래의 수술과 구불거리는 꽃잎의 굴곡을 대형 캔버스에 가득 펼쳐내는 작업을 통해 정적이며 수동적인 대상을 욕망을 지닌 동물성을 지닌 형태로 구현해낸다. 
꽃이라는 감상용의 수동적인 대상을 동적이고 주체적인 표상으로 끌어올리는 전치의 과정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상으로 한 인물작업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나이 듦’에서 오는 굴곡진 주름들이 강조됨으로써 겹겹이 구부러진 산맥과도 같은 장대한 세계가 화면 가득 펼쳐진다. 그 안에서 대상이 살아온 굽이치는 세월과 돌출된 점들이 어우러져 시간성을 부여하고 공간적인 깊이감을 자아낸다.
이와 함께 류재림작가는 2019년 이후, 주사기로 짜낸 점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듯 하나하나의 점들을 도형화하여 반복하는 작업을 병행하여 진행 중이다. 대상을 형성하는 가장 기본인 단위를 끝까지 파고들면 들수록 실체 없는 무수한 픽셀들의 나열만이 드러난다. 우리가 실제라 믿는 이미지의 유령들은 현실보다 더한 현실을 환기시킬 뿐이다. 
작가는 특히 이번 전시의 주제를 ‘진행형(ing)’과 ‘변화’에 그 의미를 두고 “점, 점, 점”이라는 주제를 설정하였다. 이에 따라 최종 화면의 점묘가 완성되기 전 단계인, 연필 정밀묘사 작업을 함께 전시 작품으로 구성하고 있다. 아날로그적인 연필데생에서 디지털화면을 연상시키는 점묘작업으로 전환되어가는 과정을 《점 점 점 dot dot dot》展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희용 : 정물  Still Life

2021. 10. 17 -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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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연필로만 이루어진 이 재현회화는 오로지 단 하나의 대상에 겨냥된 냉정한 시선을 반영하고 있다. 단호한 어둠이자 짙은 검정에 가까운 밀도 높은 배경을 뒤로 하고 적조하게 위치한 하나의 사물은 종이나 흙으로 이루어진 일상의 기물 내지 도구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 이외의 것은 단호하게 화면에서 배제되었다. 배경은 단일한 하나의 색으로 마감되었고 그 한가운데 혹은 화면 하단에 자리한 대상은 자신의 정면만을 무심하게, 즉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엄정하고 명료한 포즈는 모든 연출, 수사를 다 잠재우며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를 다시 보고자, 그리고자 하는 욕망만을 뼈처럼 세우는 연필로 다시 살아난다. 세상에 적막하게 존재하는 사물과 독대하는 나와의 이 고독한 관계만이 그림 안에서 긴장감 있게 흐르는 편이다. 오로지 검정과 흰색 톤의 스펙트럼 안에서 색의 섬세한 조율이 이루어지고 있고 주어진 대상/사물의 형태와 질감만이 단색조 안에서 중후하고 깊이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그림이지만 얇은 종이의 단면, 그 피부위에 실제 사물의 존재의 실존적 무게감을 현존시키려는 시도에 가깝다는 생각인데 그것을 거의 조각적으로 연필화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역설적인 이 회화는 납작한 피부위에서 그만큼 강도 높고 밀도 있는 존재의 물화에 해당한다. 단지 그림으로 그려지고 환영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니다.
...
이희용의 이 묵직하고 적막하며 핍진한 연필화는 그저 만만한 재현회화가 아니라 연필이라는 경질의 전통적인 도구, 가장 원초적인 재료가 이룰 수 있는 수준을, 흔히 접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 어느 지점을 ‘턱’하니 건드린다. 그것은 막막하고 무모하며 측량할 수 없는 시간과 하염없는 축적을 바닥에 두어야만 만나는 모종의 어둠과 빛이고 두께와 질량이자 실제성과 탄탄함이다. 재료가 이루는 이 완성도와 실제의 힘이, 또한 그려진 형상이 존재성 자체를 상당히 이례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정물(靜物)은 고요를 통해 존재의 말을 드러내는 묘한 환기력을 가졌다. 이희용의 도자기 정물은 그윽한 흑암(黑暗)의 배경으로부터 배태되고 도드라진 도자(陶磁)의 실물감이 돌올하다. 보기 전에 감촉해야 할 것만 같은 정물의 언어가 현(玄)의 혼돈으로부터 도자기의 오브제로 완연해진 그윽한 내력을 더듬어보게 한다. (박영택 평론가)

안용선 : 天音

2021. 12. 04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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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현장사생을 위해 강원도의 자연을 돌아보던 중 도로변 길가에서 잠시 쉰 적이 있었다. 도로 건너에는 여러 산봉우리들이 중첩되어 위치해 있었고 나는 잠시 그들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그러던 중 문득 그들의 나에게 보여주는 모습들이 하나하나 획(畫)으로 인지되는 것에 스스로 놀란 적이 있었다. 
  그것들은 자연이 나에게 전해주는 하나하나의 단어이자 문장이었으며, 아름다운 음악과도 같았다. 그때 생각이 들었다. ‘자연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우리와 본질적인 소통을 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시의 나는 감상자였다. 자연은 거대한 추상회화였고, 나는 이를 감상하는 감상자의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감상은 곧 대상과의 소통의지가 바탕이 되는 예술방법이다. 지속적인 감상을 통해 감상법은 점차 다듬어지고 대상의 본성과 어울리게 된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감상법은 회화적 실천의지를 통해 표현법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실천과정에서 일어나는 예술적 인식의 단서를 ‘천음(天音)’이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자적 의미를 말하자면 ‘천’은 자연을 의미하고, ‘음’은 드러난 현상에 대한 인식기준을 의미한다. 이렇게 ‘천음’은 자연을 감상하면서 동시에 표현하는 예술방법이 되었다.

이완숙 : 구름여인 Cloud Lady

2021. 12. 18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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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기준이 8등신의 모델과 같은 신체를 지닌 여성이라면, 이완숙작가의 작품들 속 여인들은 하나같이 그 기준에 미달되는 짧은 다리에 풍만한 신체를 지니고 있다. 마치 보테로와 마이욜의 인물들이 연상되는 동글동글한 몸집을 지닌 푸근하고 정겨운 인상들이다. 이처럼 이완숙 조각가는 친근한 일상 속의 인물을 모티브로 작가 본인의 자화상과도 같은 중년의 여인을 꾸준히 묘사해 왔다.

작가가 창조한 인물들은 희화화된 과장된 표현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형태로 표현된 표정 없는 이목구비의 형상으로 인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외롭고 공허한 상실감을 상기시킨다. 미소를 머금지 못하는 인형 같은 인체조각에 풍성한 양감과 화사한 색채의 의복을 입히고, 손에는 핸드백을 하나씩 쥐어주며 작가는 마치 주문을 외우듯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이는 모두 “내면의 빈곤함을 채우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한 작가의 말에서 찾을 수 있듯이 존재의 상실감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방식이다.

이번 전시는 <구름여인 Cloud lady>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구름과 여인이 어우러진 도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걸려있는 구름들, 강둑에 피어있는 달맞이꽃 등 아름다운 유년의 풍경들은 작가의 작업의 근원적인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뭉실뭉실 부풀어 오른 구름은 그 양감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하늘을 날아다닌다. 여인의 펑퍼짐한 몸매의 무거웠던 몸도 구름과 함께 두둥실 떠오른다. 작가는 인체조각 작품을 통해 일상에 지친 중년의 그녀들에게 무거운 육체의 짐을 내려놓고, 꿈을 꾸자며 손을 내밀고 있다.

특별히 이번 전시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전시장을 방문한 관객들을 대상으로 작가의 개성 있는 소품 조각 3점을 추첨하여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개나리미술관이 기획한 이완숙 조각가의 <구름여인>을 통하여,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의 영혼에 소박하고 순수한 마음의 평화를 전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